부모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다 안다고 생각하죠.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나를 돌봐주는 존재였고, 사춘기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는 친구같은 어른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만큼 자란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엄마’와 ‘아빠’라는 역할을 경험했을 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온 한 명의 인간인지는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인생을 다 안다고 착각했던 오만을 깨뜨리고, “과연 자녀가 부모의 인생을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의 부모가 아닌, 한 불완전하고 복잡한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1. 줄거리 :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시작된 그의 진짜 해방일지
이야기는 평생을 ‘전직 빨치산’이자 사회주의자로 살다 간 아버지 ‘고상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 빨치산과 사회주의, 그리고 연좌제라는 잔인하고 과도기적인 역사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 신념 때문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딸인 ‘아리’는 평생을 연좌제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으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겉돌았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장이 차려지고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딸 아리는 자신이 알던 아버지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빨치산으로 산에 들어갔던 옛 동지, 오래전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웃, 이념 때문에 등을 돌렸던 친척,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 이들이 하나 둘 풀어놓는 기억 속에서, 아리는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얼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장례식이라는 사흘의 시간은 곧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생애 전체를 다시 읽는 시간이 됩니다.
2.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 우리는 모두 통합된 존재다
인간은 결코 한 가지 부분이나 주어진 하나의 역할로만 기능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소설 속 아버지 ‘고상욱’은 딸 아리에게 평생 짐이 되었던 ‘답답한 아버지’였지만,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그는 수많은 방면에서 다양한 역할로 기능하던 거대하고 통합된 존재였습니다.
-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사회주의자이자 빨치산’
- 가정을 내팽개친 듯 보였지만 모진 세월을 함께 견뎌낸 아내의 ‘남편’
-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을 품고 살았던 불완전한 ‘가장’
- 이념과 상관없이 곤경에 처한 동네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했던 ‘이웃이자 은인’
-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집안을 희생시켜 형제들에게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자식이자 배신자’
-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고단한 삶을 위로하던 누군가의 ‘다정한 친구’
이 목록을 나열하고 보면 하나의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고상욱은 ‘아버지’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존재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 이름을 포함한 수많은 역할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통합된 존재였다는 것을요. 딸이 알던 아버지는 그 중 겨우 한 면,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라는 시선으로만 굳혀진 얼굴이었을 뿐이었죠.
3. 왜 우리는 부모를 ‘부모’로만 보게 되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를 그토록 단편적인 역할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요? 심리학은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1) 대상관계이론의 ‘부모의 대상화(Objectification)’와 자아중심성
소아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에 따르면, 영유아기 아이에게 부모는 독립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환경적 대상(Object)’으로 기능합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부모가 자신과 분리된 타인임을 점차 깨닫게 되지만, 심리적 기저에는 여전히 ‘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완벽한 양육자’라는 유아기적 자아중심성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즉, 자식에게 부모는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기능해야 하는 존재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부모의 고유한 감정이나 서사를 인지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2) 인지 심리학의 ‘도식(schema)’ 이론이 설명하는 ‘인지적 관성’
인간의 뇌는 복잡한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범주화하는 ‘스키마(틀)’를 사용합니다. 자식의 머릿속에 각인된 부모의 ‘역할 스키마’는 밥을 해주고, 경제적 지원을 하며, 나를 훈육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한번 형성한 도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 도식과 어긋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을 보입니다. ‘부모’라는 도식이 어린 시절 일찍이 자리 잡고 나면, 이후에 들려오는 부모의 다른 면모들(사회에서의 모습, 친구로서의 모습, 젊은 시절의 신념과 방황)은 그 도식에 쉽게 통합되지 못하고 낯설게 느껴지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는 거죠.
3) 마거릿 블렌크너(Margaret Blenkner)의 성숙한 자녀됨(Filial Maturity)
발달심리학과 노년심리학(geropsychology)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미국의 심리학자 마거릿 블렌크너(Margaret Blenkner)는 특히 노년기의 심리적 발달과 세대 간 관계, 그리고 성인기 이후에도 인간은 계속 성장한다는 관점을 확립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성인 자녀가 부모를 한 인격체로, 즉 장단점과 고유한 역사를 지닌 독립된 개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성숙한 자녀됨(Filial Matur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스스로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삶의 굴곡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도달하는 발달 과업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를 ‘역할’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나이가 든다고 자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과 성찰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부모를 부모로만 보는 것은 게으름이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아주 이른 시기에 형성된 인지적·정서적 틀이 좀처럼 갱신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리가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강제된 사흘의 시간 동안 낯선 조문객들의 증언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만나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일상 속에서라면 결코 스스로 깨지 못했을 견고한 도식이,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죠.
4. 나의 부모를 다시 보는 과정
우리는 부모에게 ‘부모다움’을 요구하며 자랍니다. 넉넉한 경제적 능력,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무조건적인 사랑, 언제나 자식을 우선하는 헌신.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서운함이나 원망을 느끼기도 하죠. 원망을 만들어낸 그 시절 그 때의 상황, 환경, 부모가 가진 인간으로써의 부족함을 염두해두지 않은 채로요. 우리는 부모라는 사람에게 오직 ‘나의 부모’로서의 역할만을 기대하며, 그들이 살아낸 나머지 삶의 무게는 헤아리지 않았던 거죠. 딸 ‘아리’가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관점은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해 흔들리고 다변화되죠. 즉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엮어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재구성’ 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렇듯 이 책을 통해서 단순히 ‘아버지를 이해하자’고 말하는게 아니라 ‘부모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보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5. 이런분께 추천합니다
- 가족을 넘어,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분
- 한국 현대사의 이념 갈등이 한 개인과 가족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궁금한 분
- 담담하고 유머러스한 문장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느끼고 싶은 분
- 읽고 난 뒤 오래도록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을 찾고 있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