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엄마만 남은 김미자’ – 헌신의 두 얼굴, 그리고 딸이 완성한 삶의 궤적

‘엄마만 남은 김미자’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예상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억을 잃는 병에 걸린 엄마와 그녀를 돌보는 딸의 투병기. 아..눈물버튼 많이 눌리겠네..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야하나… 이런 저런 기대와 생각들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물론, 작가의 엄마 ‘김미자’씨는 치매에 걸렸고 작가는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간병기가 아닙니다. 작가는 그 간병의 시간을 통로 삼아,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작가 자신으로 이어지는 3대 여성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가족의 특별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딸이자 부모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 ‘작가’라는 이름보다 ‘큰이모’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작가 김중미

‘엄마만 남은 김미자’의 작가 김중미는 2000년에 펴낸 장편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인천 만석동 달동네를 배경으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책은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TV프로그램에 소개되었고, 어린이 단행본 최초로 200만 부를 돌파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중미 작가 본인은 소설이 유명해진 뒤에도 오랫동안 소외된 지역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책이 팔려서 얻은 인세는 모두 공부방 활동과 그 외의 사회활동에 사용되죠.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작가’라는 이름보다 ‘큰이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게 더 익숙합니다. 평생 타인의 가난과 소외를 기록해온 이 작가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시선을 자신의 집 안으로 돌렸습니다. 그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 김미자씨 입니다. 이 책은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관찰해온 시선이,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도 이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향한 애잔하고 용기있는 기록입니다.

2. ‘엄마만 남은 김미자’ 줄거리 – 3대를 흐르는 여성들의 선택과 삶의 궤적

이야기는 단순한 치매 간병기를 넘어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의 역사를 매끄럽게 포개어 놓습니다. 자신이 평생 쓴 글을 품에 안고 돌아가신 할머니, 항상 일이 먼저였던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오로지 자녀만을 위한 엄마로 살고자 했던 애썼던 김미자씨, 그리고 그런 엄마와는 달리 일하는 엄마로 살려고 했던 작가.

그러나 가정을 성벽처럼 지키며 살아온 김미자 씨에게 치매가 찾아오고, 그녀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들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그 부서지는 기억의 틈새를 지켜보며,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삶을 깊이 반추하기 시작합니다.

3. 치매와 남은 정체성 – 가장 깊은 자아, 가장 얇은 자아

김미자씨는 치매를 겪으며 딸도, 남편도, 자기 자신의 이름조차 잊습니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먼저 챙겨 먹이려는 몸짓, 상대를 살피는 태도, 즉 ‘엄마’로서의 정체성입니다.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이 엄마로써의 자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한 가지 추측은, 이것이 그녀에게 가장 깊이 새겨진 자아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기 개념은 여러 층으로 쌓이는데, 가장 오래, 가장 자주, 몸으로 반복한 역할일수록 인지 기능이 무너져도 가장 나중까지 남는다고 합니다. 김미자에게 ‘엄마’는 이름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수십 년간 훨씬 더 많이 반복된 자아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모든 것이 지워져도 이 역할만은 몸에 남아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추측과 정반대되는 개념도 가능합니다. 모든것을 다 잃었을 때 유일하게 남는 것이 ‘온전한 나’가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으로서의 나’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김미자라는 한 개인의 자리가 애초에 얼마나 얇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는거죠. 평생을 자신을 지우며 산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역할’이었다는 것은, 숭고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가장 깊이 새겨진 자아이면서, 동시에 가장 지워진 자아. 우리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을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가장 사랑한 역할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미처 벗어나지 못한 역할일까요.

4. 두 가지 종류의 헌신 – ‘가정의 파수꾼’ 김미자 vs ‘세상의 파수꾼’ 김중미

김미자 씨는 자신의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가정에 집중했습니다. 그녀에게 ‘엄마’라는 역할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세상을 완벽하게 지켜내겠다는 거룩한 사명이자 가족에 대한 헌신이었으며, 그녀의 정신세계에 깊이 새겨진 자아입니다. 그래서 치매로 인해 자신의 이름, 가족, 자식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고도 ‘엄마’라는 정체성은 끝까지 놓지 못하죠.

반면, 평생 사회운동가로서 가난한 이웃과 아이들의 곁을 지키며 살아온 김중미 작가는 ‘사회에 대한 헌신’을 합니다. 딸은 엄마의 희생을 보고 자라며 그 답답함과 한계를 느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엄마가 가족에게 쏟아부었던 그 뜨거운 ‘모성적 자애’‘헌신의 에너지’를 타인과 사회라는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켜 나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울타리 안을 지키는 파수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울타리 밖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에 자리 잡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본질’은 어쩌면 완벽히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5. 정체성의 통합 –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김중미 작가는 어머니의 기억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거꾸로 어머니의 삶을 복원하는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복원은 어머니 한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동두천과 인천을 오갔던 가족의 역사를 함께 엮어냅니다. 전쟁과 분단, 피란과 이주라는 시대의 무게가 개인의 서사와 한 몸처럼 얽혀 있다는 것을,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되짚는 과정에서 새삼 발견합니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도달하는 통찰은 단순한 ‘이해’나 ‘화해’를 넘어섭니다. 엄마와는 다른 삶을 택했지만,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작가 자신의 삶 역시, 형태만 다를 뿐 돌봄에 자신을 내어준 삶이라는 점에서는 어머니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대물림 되고 있는 삶입니다. 대물림은 똑같은 모습으로만 이어지지 않죠. 형태를 바꿔가며 이어져서 언뜻보면 전혀 다른 모습인 것 같지만 그 안의 본질은 같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작가 자신으로 이어지는 이 여정의 끝에서, 작가는 세 세대의 삶을 각자 다른 시대가 요구한 방식의 돌봄과 헌신으로 다시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되짚음 자체가, 기억을 다 잃은 어머니 대신 그 삶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된 것 아닐까 합니다.

6. ‘엄마만 남은 김미자’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을 보며 사랑함과 동시에 답답함과 죄책감을 느껴본 적 있는 모든 딸들.
  • 작가처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라는 원초적 테두리와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분들.
  • 부모님의 늙어감과 치매를 마주하며, 그분들의 삶을 한 인간의 온전한 서사로 마주하고 다정하게 이별할 용기를 얻고 싶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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