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보통 ‘누가, 왜’라는 질문에 매달립니다. 그게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재미이죠. 그런데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른 질문이 남았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누가, 왜’라는 질문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따라갔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쫓던 사람들에게 자꾸 마음이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 진실을 원했던 걸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던 걸까요.
1. 줄거리 : 누군가 사라지고, 같은 사람이 돌아온다
이야기의 배경은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물의 도시 ‘야나쿠라’입니다. 사방이 물길로 연결되어 흐르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홀연히 사라지는 연쇄 실종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실종은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라졌던 이들은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는데, 정작 자신이 사라졌던 기억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전직 대학교수 교이치로는 실종자들의 집이 하나같이 수로와 인접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제자 다몬, 딸 아이코, 신문기자 다카야스와 함께 이 기이한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로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범인을 잡는 급박한 스릴러라기보다, 물 안개 가득한 도시의 음산하면서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인간의 본원적인 무의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2. 심리적 장치들 : 원형적 상징과 집단무의식의 결합
1) 물 :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문
이 작품에서 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물은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말한 무의식의 가장 대표적인 원형입니다. 물은 고정된 형태가 없고, 다른 것과 쉽게 섞이며, 그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겉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온 도시를 그물처럼 휘감고 있는 야나쿠라의 수로는 인물들의 의식 아래 잠겨 있는, 개인의 에고(Ego)를 넘어선 집단무의식의 바다입니다.
2) 달 : 또 하나의 자아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달의 뒷면’은 그 자체로 상징적입니다. 우리는 달의 앞면만을 영원히 마주할 뿐, 뒷면은 결코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에서 의식이 볼 수 있는 부분과, 결코 직접 들여다볼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칼 융(Carl Jung)은 인간의 정신을 밝은 의식의 영역과 그 뒤에 감춰진 무의식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이 소설의 제목 자체가 이미 그 구도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셈입니다.
3) 하나가 되려는 욕망, 그 근원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동체를 원합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개인이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은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칼 융(Carl Jung)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인 동시에 더 큰 전체와 연결되고자 하는 깊은 무의식적 욕망을 지닌 존재입니다. 프로이트(Freud)는 ‘대양적 느낌(oceanic feel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에게는 자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세계와 하나로 녹아드는 원초적인 감각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아직 ‘나’와 ‘세상’이 분리되기 이전, 갓 태어난 아기가 느꼈을 무경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심리적 지향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사라짐이라는 사건이 공포보다는 오히려 프로이트의 관점의 대양적 느낌에 대한 어떤 그리움의 정서를 동반한다고 보여집니다. 실종 후 돌아온 자들이 가진 극단적인 ‘평온함’은 모든 고통과 개별적 자아가 소멸된 상태를 뜻합니다. 추적자들은 그 평온함을 의심하면서도 깊이 동경하죠.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회적 의무와 소외감에서 벗어난 ‘완전한 영혼의 안식처와 자아의 해방’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 대가입니다. 하나가 되는 순간, 개인은 사라집니다. 온다 리쿠는 이 지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연결은 과연 자유를 완성하는가, 아니면 자아를 지워 버리는가.”
3. 추적자들은 정말 무엇을 원했는가
그렇다면 사라진 이들을 쫓던 교이치로와 다몬, 아이코, 다카야스는 정말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이들의 추적 행위 자체가, 실종된 이들이 느꼈을 그리움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저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상실이나 결핍, 혹은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관계를 안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경계가 사라지는 사건’을 추적한다는 것은, 어쩌면 진실 그 자체보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무언가를 무의식중에 좇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융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의 탐사는 개인의 의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의 층위를 향한 여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이성적인 행위 아래에서, 이들 역시 결국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의 벌어진 틈을 메우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4. 이 소설이 우리에게 남긴 것 : 나 속의 우리, 우리 속의 나.
오늘날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SNS는 실시간으로 우리를 이어 주고,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하며, 유행과 여론은 순식간에 개인의 생각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외로움이 줄어들 것이라 믿지만… 이상하죠.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외로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와의 연결이 지나칠수록 나 자신의 목소리를 잃기도 하죠.
온다 리쿠가 말하는 ‘달의 뒷면’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온다 리쿠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모든 상처와 번민이 지워진 완벽한 가짜 평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상실의 슬픔을 겪더라도 나라는 불완전한 자아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모두와 연결되는 능력이 아니라, 연결 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를 잊지 않는 힘입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이 고통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살아있다’는 고귀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5.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몽환적인 정서를 동시에 느끼고 싶은 분
- 융의 집단무의식이나 원형 이론에 관심 있는 분
-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 그리고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분
- 단순한 미스터리보다 상징과 의미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분
- 인간의 정체성과 집단심리를 탐구하는 작품을 읽고 싶은 분 명확한 해답보다 여운이 긴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