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화 속 주인공은 늘 ‘셋째’일까: 숫자 3과 자아 성장의 심리학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방앗간을 물려받은 첫째, 당나귀를 받은 둘째와 달리 고작 고양이 한 마리를 받은 셋째.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게으른 형들과 달리 벽돌로 튼튼한 집을 지은 셋째. 형들에 비해 게으르거나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모든 시험을 통과해 왕이 되는 러시아 민담의 ‘바보 이반’.

왜 수많은 이야기 속 거대한 모험의 열쇠는 늘 ‘셋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는 신화학과 심리학이 오래전부터 답을 찾아온 흔적이 있습니다.

1. 숫자 ‘3’의 상징성: 조화와 균형, 그리고 완전함

심리학과 신화학에서 숫자 ‘3’은 오래전부터 특별한 지위를 가진 숫자로 다뤄져 왔습니다. 1과 2의 합이라는 산술적 의미를 넘어, ‘균형’과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겨진 것입니다.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숫자 1이 하나의 존재라면, 2는 그에 대립하는 쌍, 혹은 갈등을 의미합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말이죠. 숫자 3은 이 1과 2의 대립을 흡수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해소와 상생’을 뜻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처럼 종교적으로 신성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추상적인 상징이 실제 동화 속에서는 어떻게 구현될까요? 바로 ‘삼형제 서사’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그것도 아주 오래된 패턴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2. 아들러(Adler)의 출생순위 이론: 결핍이 만들어낸 위대한 동기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순위(Birth Order)가 개인의 성격 형성과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아들러의 이론에서 막내의 위치는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막내가 형제들의 과도한 관심 속에서 자라 응석받이가 될 가능성과, 동시에 형들을 뛰어넘으려는 강한 동기를 갖게 될 가능성을 모두 언급했습니다. 동화 속 셋째의 성공담은 이 중 후자의 경로, 즉 결핍을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성적 열등감과 우월성 추구 : 셋째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보다 힘이 세고 노련한 첫째와 둘째 형을 보며 자랍니다. 물리적, 정신적 자원을 형들에게 선점당한 상태이기에 늘 ‘결핍’을 느끼며, 이는 열등감으로 작용합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보았고, 이를 초기에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으로, 이후에는 ‘우월성 추구’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창조적 보상과 차별화 : 셋째는 형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형들이 선택하지 않은 무기, 즉 유연함이나 꾀, 친화력, 혹은 이타심을 개발합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셋째가 고양이의 조언을 전적으로 따르는 유연함을 보이거나, ‘아기 돼지 삼형제’의 셋째가 당장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성실함을 택하는 장면은, 형들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심리가 서사 위에 구현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3. 융(Jung)의 개념으로 읽어보는 삼형제: 자아에서 자기로

여기서부터는 융의 분석심리학 개념을 빌려, 동화 속 삼형제 구조를 하나의 해석 틀로 읽어보려 합니다. 이는 융이 직접 제시한 도식이라기보다, 그의 개념을 삼형제 서사에 적용해본 시도라는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이 틀에서 보면 첫째와 둘째는 대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거나 사회적 기준에 충실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시련 앞에서 오만하거나 고정관념에 갇혀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이는 외부의 조건에만 의존하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아(Ego)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반면 셋째는 종종 ‘바보’로 불릴 만큼 사회적 기준, 즉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편견이 없고, 모험 길에서 만나는 동물이나 노인 같은 조력자들을 스스럼없이 도우며 그들의 지혜를 얻습니다. 융의 개념을 빌리면 이들은 무의식 속 그림자(Shadow)와 조력자의 원형을 배척하지 않고 통합해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셋째가 왕국을 물려받거나 보물을 차지하는 결말은, 인간이 내면의 결핍과 무의식적 그림자까지 끌어안아 진정한 성장, 즉 개성화(Individuation)를 이루어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구조는 조지프 캠벨이 정리한 ‘영웅의 여정’ 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캠벨은 신화 속 영웅이 처음부터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하고 부족한 상태에서 ‘소명의 부름’을 받아 여정을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셋째가 가장 적은 유산을 받고,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상태에서 모험을 떠나는 설정은 이 ‘결핍된 출발점’이라는 영웅 서사의 오래된 공식과 정확히 겹칩니다. 동화가 왜 하필 셋째를 주인공으로 세우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 여기에 있는 셈입니다.

4. 이야기 속 셋째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우리는 모두 셋째

형제의 수에 따라 누군가는 첫째로, 누군가는 둘째로, 셋째로 태어나지만, 원초적인 가족 구성에 있어서 자녀는 언제나 세 번째 구성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있어야 자녀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몇 년 터울의 형제와 벌이는 경쟁은 우리에게 잦은 실패의 경험을 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반면 어른인 부모와는 애초에 대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춘기 시절만큼은 예외입니다.

우리가 동화 속 셋째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늘 무력한 ‘셋째’처럼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먼저 태어나 자원을 선점한 이들이 가득합니다. 때로는 대결조차 꿈꿔보지 못할 만큼 높이 쌓인 벽 아래에서, 나는 늘 뒤처진 막내처럼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 보잘것없던 주인공이 악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사랑을 쟁취하고, 끝내 영웅이 되어가는 모습에 우리 자신을 대입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셋째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조건이 나쁘다는 것, 출발선이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것, 남들이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하는 순수함을 가졌다는 것은 실패의 요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웅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 오래된 이야기들은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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